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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6]왕의 대변을 핥아 적의 포로에서 벗어나다(극기1)
작성일시: 2014-02-04 00:08:23   
작성자 : 박명수(고16)   

왕의 대변을 핥아 적의 포로에서 벗어나다.(극기1)

동서양을 막론하고 큰 뜻을 이룬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고통을 참고 이겨내는 극기의 과정이 있었다.
우리나라 고사에도 공부를 중도에 마치고 돌아 온 한석봉의 얘기가 유명하다.
어머니는 불을 끄고 떡 썰고, 석봉은 글을 쓰는 시합을 하여 석봉이 자신의 노력이 아직 멀었다는 것을 깨우치고 다시 정진하여 서예의 대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과 잠시 휴전이 되었을 때, 원균 등의 모함으로 이 순신 장군은 죄를
뒤집어쓰고 갖은 곤욕을 치룬 후, 백의종군 하는 수모를 극복하고 다시 수군통제사가 되어 패전하고 남은 배 13척을 모아 끝내 왜군을 물리쳐 역사에 길이 남는 장군이 되었다.

흔히들 용기를 말할 때 동내 깡패의 무릎을 기어간 한신의 인내를 말하면서, 일시적인 수치와 모욕을 참고 이겨낸 한나라의 대장군 한신을, 큰 뜻을 품은 자의 진정한 극기로 찬양 한다.
그러나 극기의 백미는 월왕 구천의 ‘와신상담’ 얘기일 것이다.

월나라가 오나라에 패하여 월왕 구천이 오나라에 포로로 끌려가는 자리에서 구천은 신하들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이 때 범여가 나서서 말했다.
“신이 듣건 데 불행이 없으면 그 뜻을 넓힐 수 없으며, 근심이 없으면 앞날을 멀리 내다볼 수 없다고 하옵니다.
자고로 성현들도 다 갖은 고생과 액난을 겪었거늘 어찌 왕께서만 이를 면하려 하시나이까.”
아뢰고 자신이 구천을 따라 가기를 자청하였다.

월왕 구천은 오왕 합려가 침공해 왔을 때 잘 싸워 합려를 물리쳤고, 합려는 그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여 그것이 화근이 되어 죽었다.
이에 합려는 손자 부차로 하여금 복수를 유언 하였고, 그 복수전에서 월나라는 패하여 나라가 망할 지경에 놓이게 된 바, 오 왕은 구천을 포로로 끌고 가 조부 합려의 능 옆 석굴에서 기거하게 하면서 능을 보살피게 하였다.
석굴 옆에는 마구간을 지어 말을 돌보도록 하였으며, 수시로 감시원을 보내 구천의 일거를 살피며 노예와 같은 생활을 3년여 년 째 시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 왕 부차가 병들어 있을 때 구천은 문병을 자청해 갔다.
“신은 용체가 미령하시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신이 용안을 뵙고자 청한 것은 신이 동해(월나라)에 있었을 때 용한 의원으로부터 약간 의술을 배운 일이 있습니다. 즉 환자의 대변을 보면 대강 그 병세를 짐작합니다.”
범여의 지략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으음 그래 그것 마침 잘 되었구나. 변통을 들여오너라.
그리고 모두 물러 나갔다가 잠시 후에 들어오너라.”
오왕 부차는 변을 보고나서 변통을 구천에게 보였다.
구천은 공손히 꿇어 앉아 그 변을 핥았다.
이 광경을 보자 좌우 사람들은 다 코를 움켜쥐고 외면했다.
이윽고 월왕 구천이 부차에게 꿇어 엎드려 아뢴다.
“신은 감히 두 번 절하고 대왕을 축하 하나이다. 대왕의 병환은 기사 일에 차도가 있을 것이며 3월 임신 일에 완쾌하실 것입니다.”
모두 범여가 일러준 대로 말한 것이다.

“그걸 어찌 아느냐?”
“신이 지난날 의원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대저 인분은 곡식이 변한 것이기 때문에 계절에 순응하면 병자가 살아나고, 계절과 역행하면 죽는다고 하더이다.
신이 방금 대왕의 변을 맛본즉 그 맛이 쓰고 시었습니다. 즉 그 쓰고 시다는 것은 바로 봄을 응하는 동시에 여름 기운을 뜻하기 때문에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오 왕이 기뻐하며 감탄 한다.
“어질도다. 구천이여!
그 어느 신하가 군주의 변을 맛보고 그 병세를 진단하리요. 만고에 없는 희한한 일이다.”

오왕 부차가 좌우 신하에게 말한다.
“그 어느 신하도 이와 같이 못할 것이며 태자라도 구천처럼 하지 못할 것이다.
구천을 석실에서 편안한 집으로 옮겨 살도록 주선해 주어라.
내 병이 낫기를 기다려 월나라로 돌려보낼 작정이다.”

과연 오왕 부차의 병은 구천이 예언한대로 완쾌 했다.
부차는 잔치를 베풀고 구천을 칭찬 하였다.
“월왕 구천은 어질고 덕 있는 사람이라, 어찌 오래도록 욕을 뵐 수 있으리요.
과인은 장차 그 죄를 용서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낼 생각이다.”
오자서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으나 부차는 듣지 않고 월 왕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구천은 본국에 돌아오자 곧 복수를 결심하고 행동에 옮겼다.
변을 핥은 뒤로는 늘 입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면서 불쾌해 하였다.
식사 때마다 멸이라는 산나물을 먹고 입에서 나는 냄새를 잊으려 하였다.
그는 밤에도 잠을 자지 않았다.
자신부터 가혹하게 다루기 위함 이었다.
잠이 오면 송곳으로 무릎을 찔렀다.
겨울에 발이 시려서 오므리게 되면 도리어 찬물에다 발을 담그고 자신을 꾸짖었다.
겨울이면 방에 얼음을 갖다 놓고 여름이면 화로를 끼고 있었다.
그리고 의자나 침상을 쓰지 않고 장작을 깔고 그 위에서 기거 했다.
또 쓰디쓴 쓸개를 메달아 놓고 수시로 그것을 핥으면서 자신을 격려 했다.[와신상담(臥薪嘗膽)의 유래가 여기에서 나왔다.]

그는 밤중이면 소리 없이 흐느껴 울었고 울다가 다시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구천아! 지난날 회계에서 오나라에게 항복하던 그 당시 수치를 잊었느냐”
그리고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래서 월 왕 구천은 이가 모두 으스러졌다.
구천은 오나라에 대한 원수를 갚고자 자기 자신에게는 그처럼 엄격했지만 백성에 대하여는 온갖 혜택을 베풀었다.

7년 동안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지 않았고, 고기를 먹지 않았고, 비단옷을 입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 달에 한 번씩 오나라에 사신을 보내 오 왕 부차에게 문안을 드렸다.

회계산에서 수치를 겪은 후 21년여의 갖은 노력 끝에 범여와 문종 같은 훌륭한 신하들의 도움을 얻어 오나라와 전쟁을 벌여 오 왕 부차를 죽이고 오나라를 멸하여 춘추시대 5패의 한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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